* 상춘과 만남의 장소로 거론되었던 하천교로 향하는 숲길 위에서 경산과 정대는 비 오듯 땀을 흘렸다. 흙냄새와 벌레 찌륵이는 소리만이 가득한 외길에서 경산은 몇 번이고 고개를 돌려 정대와 결합된 손목 부분이 안전한지를 확인했다. 걸음을 옮길 때마다 속옷 안에 밀어 넣은 자지가 쓰라려 왔지만 정대도 만만치 않을 거란 생각에 샅에서 밀려오는 아픔을 견뎌냈다. ...
* 초조하게 아랫입술을 씹어 물던 상연은 괜히 라이터 부싯돌만 칙칙 건드렸다. 녀석이 학교에 나타나지 않는 건 이제 위험한 일이 얼추 정리됐다는 방증일 텐데, 기억의 퍼즐 조각이 뒤틀려있었다. 세상이 상연만 배척해두고 촘촘히 잘 짜인 기분이었다. 박우수를 만나 확인해야 했다. 상연이 우수를 찾아가는 건 이번이 두 번째였다. 하지만 다시 그 산길을 지나 머리...
* 상연은 불에 덴 것처럼 눈을 떴다. 구멍이 숭숭 뚫리고 부식되어 골조가 다 드러나 보이던 천장은 눈을 몇 번 깜빡임과 동시에 흰 석고 텍스 천장으로 바뀌었다. “미친, 눈 떴다! 이 새끼 눈 떴다고!” 공교롭게도 한울과 석민이 눈앞에 있었다. 둘은 호들갑을 떨면서 상연의 얼굴에 대고 손바닥을 휘휘 흔들었다. 그걸 멍하니 바라보던 상연은 마치 주객이 전도...
* “좋은 말로 할 때 솔직히 말해, 아들. 잃어버린 거 아니지?” 정화자 여사가 언성을 높이면 경산은 쩔쩔맸다. “그게 아니라 수리를 맡겨뒀다니깐요.” “새벽에 오토바이 수리를 다 맡긴다고?” “북정 카센터는 늦게까지 하거든요.” “너 엄마가 전화 해본다?” “아, 엄마.” “얘가 어쩐지 어제 그제 하는 짓이 좀 이상하더라니.” 오늘은 비도 오고 장사가 ...
* 바이크를 타고 오는 내내 비를 맞은 상연의 손이 붉게 얼어있었다. 우수는 상연이 우비를 입혀준 덕에 덜 젖은 상태였으나 마음이 내내 불편했다. “여기가 확실해?” 바이크를 세워둔 상연이 묻자 우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답했다. “아마도.” 사위는 빛줄기 하나 없는 야산이었으며 비바람은 점점 더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. 상연이 감기에 걸릴 거란 생각에 우수는...
* 제욱의 수면 시간이 부쩍 늘었다. 일을 하던 중 서서 졸거나, 집에 돌아가는 길에 잠깐 붙인 눈을 뜨지 못해 종점에서 깨워짐을 당하거나, 어떤 날은 눈을 뜨고 졸기까지 했다. 때론 꿈에 난데없이 사장이 나타나기도 했다. 그의 활짝 웃는 얼굴을 보고는 스스로가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. 다만 옅게 음영져 수척한 그늘이 보이는 지금의 인상과는 달리 도톰한 ...
* 꼭꼭 숨어라, 머리카락 보일라. 빛줄기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선 앳된 목소리가 외로이 웅얼거렸다. 남자아이의 목소리. 등 뒤로 점점 작아지는 듯하던 목소리로부터 도망치듯 제욱은 천천히 걸어 나갔다. 꼭꼭 숨어라, 머리카락 보일라. 다 숨었어? 누군가가 당장이라도 근방에서 뛰어들 것 같아 제욱은 사뭇 긴장하며 주위를 살폈다. 여전히, 발치 앞도 보이지 않는...
* 중화반점의 문을 밀고 들어온 새카만 옷차림의 남자들은 몸 곳곳에 과도한 금박의 액세서리를 얹은채였다. “자아, 자. 싸장님 계십니까? 사장님!” 그들은 시끄러운 목소리를 내며 박수를 짝, 짝 쳐댔다. 인상 나쁜 덩치들 고작 다섯이 몰려왔을 뿐인데, 홀에서 식사하던 손님들이 죄다 몸을 일으켜 나가버렸다. 그들의 손에 각종 집기들이 파손되기 시작하자 정대의...
* 바쁜 점심시간. 드르르릉, 탁. 경산은 오토바이의 시동을 끄고 헬멧의 턱끈을 풀었다. 그리곤 사이드 스탠드를 내려둔 채 능숙하게 중화반점의 문을 밀고 들어서려다 멈칫했다. 단지 카운터에서 응대하는 사람이 바뀌었을 뿐인데, 왜 다른 가게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인지. “와우 옆얼굴 미쳤네. 이건 혁명이다.” 경산은 행여나 제가 생각한 말을 체면도 모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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